‘모두의 대통령’이라는 희망은 민중의 뜻과 무관한 이재명의 독선
비현실적 아집 실현의 도구로서 독선과 독재 소환
민주는 분산, 다양성, 원심적 권력 구조에서 가능
‘작은 욕심’ 여부를 대통령이 획일적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독선
행정통합 찬반 담론은 이완용, 9적이 아니라 이승만, 박정희로 치환되어야
한겨레 신문 사설에 행정통합 지지의 변(辯)이 실렸다. “공직선거법상 지방선거 출마 공직자 사퇴 시한(5일)이 다 되도록 여야가 처리 방안조차 합의하지 못한 채 혼란만 드러내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여야는 늦어도 3월 임시국회 첫 본회의가 열리는 12일까진 행정통합 방안을 확정하고 처리해야 한다”, “(충남⸱대전) 주민 찬성 여론이 다른 지역만큼 높지 않다지만, ... 대규모 정부 지원이 예정된 행정통합에서 충남·대전만 빠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야 모두 국토균형발전의 대의에 부응하는 대국적 관점으로 행정통합에 임하기 바란다”는 것이다.(한겨레, 2026.3.4.)
한겨레의 이 같은 사설에는 크게 세 가지 문제점이 있다. 첫째, 행정통합이 안 된 지역 때문에 한겨레가 ‘답답한 노릇’이라고 하는 것이다. 주민 여론이 통합반대가 많은 줄 알면서도 다른 곳도 하니 무조건 해야 한다는 것이 한겨레의 입장이다. 다른 곳 주민이 찬성을 해도 대전⸱충남이 무조건 해야 한다는 논리는 성립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 다른 곳 주민의 의견이 찬성이 많은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주민투표를 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겨레가 다른 곳은 찬성이 많은지 어떻게 아는 것일까? 사실은 곳곳에서 반대의견이, 대구⸱경북뿐 아니라 광주⸱전남에서도 속출하고 있다. 그런데 반대의견은 다 뭉개버리고 의회와 국회가 중심이 되어 행정통합을 강행하고 있는 중이다. 광주⸱전남은 숫제 국회에서 입법안을 먼저 통과시키고, 후에 시⸱도의회의 동의를 받아냈다. 행정통합을 정부가 나서서 강행하는 명백한 증거이다.
한겨레는 이 같은 정부 측 입장에 편승하고, 반대의견을 묵살했다. 이것은 한겨레 신문이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사실 뿐 아니라, 의회 과두정, 관치주의에 편승하여 민주정신을 말살하고 있음을 뜻한다.
둘째, 정부 지원이 예정되어 있으니, 대전⸱충남도 빠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은 행정통합 여부와 무관하게 각 지역에 골고루 배분되어야 한다. 한편으로, 중앙정부에서 지역에 행정통합을 강행할 아무런 권리가 없다. 다른 한편으로, 중앙의 지시를 따른 지역에만 재정보조를 한다는 것은 헌법과 법률에 보장하는 지역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것이다. 위헌, 위법한 정부의 정책은 그대로 시행되어서는 안 되고, 중지시켜야 하며 그 위헌성 여부를 법으로 가려야 한다.
셋째, 한겨레 사설은, “국토균형발전의 대의에 부응하는 대국적 관점으로 행정통합에 임하라”고 한다. 여기서 제기되는 의문은, 행정통합을 하지 않으면 국토균형발전이 안 되나? 그런 것은 아니고, 오히려 그 반대이다. 국토균형발전은 시⸱도 통합이 아니라, 오히려 시⸱도 및 시⸱도 간 연대와 협력을 통해 더 잘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통합은 의사결정의 획일화를 초래하므로 다양하고 창의적인 정책의 발견을 저해한다. 유럽은 광역의 경제단위이지만, 통합이 아니라 연합체(유럽연합)로 이루어진다. 행정통합과 균형발전은 서로 필연적 고리로 연계된 것이 아니다.
광주⸱전남 행정통합 입법안은 국회를 통과하여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단계에 있다. 그 통합 광주⸱전남이 새 정책의 전망을 제시했는데, 그 내용을 보면, 죄다 반드시 통해야만 되는 것들이 아니다. 광역경제 단위의 구성을 통한 지역 살리기는 통합이 아니라, 시⸱도 간 협력과 연합을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거창하게 떠들어대는 AI 분야는 오히려 권력의 세분화를 통해 더 효과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으로 회자한다.
연합과 협력을 통해서도 이룰 수 있는 것들을 두고 여야 합세하여 중앙정부에서 통합을 강요하는 것이 위헌, 위법한 것은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정부(국가)보충성 원리를 위반했다. 민주국가의 정부는 사생활이나 지역 행정에 대해 최소한 개입을 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 중앙정부는 행정통합 여부와 무관하게 각 지역에 대해 동등하게 지원하고, 중앙 행정권 및 재정권도 똑같이 지역으로 이관해야 한다.
대전⸱충남에서는 행정통합 여부를 둘러싸고 느닷없이 조선 말기 매국의 이완용과 을사5적(이 경우 9적)이 소환되었다. 한편에서는, 주민투표 없이 행정통합을 강행하려는 9명을, 지역을 배반한 ‘9적’으로 규정하고 나섰고, 다른 한편에서는, 통합에 반대하는 쪽을 “이완용의 매국(賣國)에 빗대어, ‘고향을 팔아먹은 매향(賣鄕)’” 등으로 규탄했다고 한다.
그러나 행정통합 관련에서는 매국노보다 오히려, 1948년 헌법에 보장된 지역분권의 실천을 끝까지 거부했던 이승만, 개발독재 박정희 등을 소환해야 할 것 같다. 담론의 핵심은 주민투표 없이 권력 구조를 집권화하고 관료주의 독재를 지향하는가의 여부로 환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양승조(충남도지사)가 대전·충남 통합이 무산된 것을 두고 “정치적 욕심이 지역의 미래를 막고 있다”, “세종 행정복합도시에 20년간 21조 5,000억 원이 투입됐듯, 통합이 이뤄질 경우 5년간 20조 원 규모의 재정지원이 가능하다는 전망도 제시”, “기회 자체를 정치적 셈법으로 걷어차는 것은 다른 문제”, “지속 가능 발전목표(SDGs) 관점에서, 양질의 일자리 창출, 수도권 집중을 완화하고 지역 간 격차를 줄이며 청년 일자리를 창출하는 구조적 개혁이 통합 논의의 본질”이라고 했다 한다.(SDG 뉴스, 2026.3.3. http://www.sdgnews.net)
이런 양승조의 발언이 문제가 되는 것은, 복합도시 혹은 행정통합의 지역에만 재정지원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지속 가능 발전목표”는 통합 아닌 지역 간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더 생기와 활력을 도모할 수 있다. 통합에 의한 관성적 관료주의의 폐해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복합도시, 행정통합 등 형태와 무관하게 지역에 대한 재정보조는 균등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불균등한 지역 차별은 위헌, 위법하여 바로 행정소송과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다.
청년이 지역을 떠나고 지역 인구가 줄고, 산업이 수도권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 지역 행정통합이 안 되어서 그런 것인가? 아니다. 지역 행정통합과 아무 연관이 없고, 수도에 모든 권력과 돈이 몰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수도에 몰린 기능을 해체해야 하는 것이지, 왜 엉뚱하게 지역 행정통합을 들고 나오는지, 오리무중이다. “지속 가능한 대한민국”, “수도권 1극 구조 속에서 벼랑 끝에 선 지방의 생존 전략”은 지역 행정통합이 아니라, 수도권 1극 자체의 해체이다. 그 전략은 수도권과 같은 극을 지역에도 만드는 것이 아니다.
행정통합을 적극 추진하려는 대통령 이재명은 행정통합을 ‘대의’로, 또 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을 ‘작은 욕심(사리)’에 연연하는 이들로 규정했다. 이는 양승조가 행정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을 매도하여, “정치적 욕심이 지역의 미래를 막고 있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여기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고 싶은 나름의 포부를 가진 이재명이 범하는 오류가 있다. 그 비현실적 희망을 실천하는 도구로서 독선과 독재를 소환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작은 욕심’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독선이다. 대소를 막론하고 사람은 저마다 소중한 것들을 달리 두고 있다. 민주는 분산, 다양성, 원심적 권력 구조를 전제로 한 것이고, 그 ‘작은 욕심’이 무시되어도 좋은 것인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주권자 국민 개인이다. 그 개인의 다수결로 '대의'는 이루어지는 것이고, 대통령 개인이 개입하거나 강요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독선, 독재의 전통은 누구를 가릴 것 없이 우리 심성 내부에 굳게 뿌리 내리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윤석열 등, 특정 개인만 나무랄 것이 못 된다는 뜻이다. 검찰의 흑역사를 청산하려는 마당에, 청와대 및 행정부가 역행의 기치를 들고 나선 것으로 회자하는 것도 그 같은 현상의 단편이다.
연초의 정부 고시 제1 입법안에 이어. 최근 제2 입법안에서도. 정성호(법무부장관), 김민석(총리), 봉욱(민정수석) 등이, 신설 중수청에다 과거보다 더 강한 검찰 권력을 주려한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이에 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및 민주당원들이 반발하고, 제2차 정부 고시 입법안을 취소하라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2차 고시된 이른바 '누더기' 정부법안에는 다소간 대통령의 뜻도 실려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검찰보완수사권 관련하여 완전히 없애는 것은 안 된다는 대통령 이재명의 발언이 그 같은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정⸱청(정부, 청와대)과 국회 간 다소간 잡음을 두고, 논객 정규재가 대통령 편을 들고 나섰다. 대통령은 전 국민이 뽑은 것이지만, 국회의원은 지역구에서 뽑힌 것이니, 국회보다 대통령의 권한과 의견이 우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규재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국회가 당 대표 정청래 개인의 것이 아니라, 300인이 모인 곳이고, 그 기능이 입법부라는 사실이다. 행정부는 입법부에서 만든 법을 시행하는 기관이므로, 입법부에 종속적인 기관이다. 로크와 몽테스퀴외의 2권분립론(입법과 행정)에 따르면, 입법부가 행정부에 절대적으로 우선한다.
대통령이 국회(혹은 당대표)보다 권력서열에서 우선해야 한다고 보는 정규재의 발언은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된 말)’이다. 그의 인식은 윤석열식 사고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윤석열이 12.3 계엄 선포한 것이나, 그 과정에서 잃부 국무위원을 소환조차 하지 않은 것이 다 정당한 통치행위였노라고 여전히 어깃장을 놓고 있는 점에서 그러하다.
정규재의 주장처럼, 대통령이 국회 위에 군림하는 것이라면, 또 윤석열의 ‘통치행위’ 주장이 일리가 있는 것이라면, 그 대통령의 권한을 견제하는 것은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통령이 국회 위에 군림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독재의 징후이다. 정규재와 윤석열은 같이 독재체제를 지향하고 있다.
여기에 이재명도 딱히 예외가 아니다. 작년 말에 갑자기 행정통합 화두를 꺼내더니만, 번갯불에, 콩볶아 먹듯이, 2월까지 입법하고 6.3 지방선거에서 당장에 통합단체장을 뽑으라고 종용했기 때문이다. 이재명은 행정통합에 반대하는 이들을 ‘작은 사사로운 욕심’에 연연하는 자들로 매도했다. 이런 것을 독선이라고 하고, 그 독선은 장차 독재로 이어지는 주춧돌이 된다.
행정부 위에 국회가 있고, 그 국회 위에는 그들을 뽑은 국민이 있어야 한다. 국민주권은 선언적 헛소리가 아니라 제도화되어야 한다. 유신독재 이후 입을 봉하고, 가면 뒤에 숨어 있던 ‘국민주권’이 해맑은 얼굴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 다음 개헌에서는 그 모든 것에 앞서 국민발안권이 우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