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수의료 의사 부족이 과도한 사법리스크 부담 때문이라는 의사들의 사실무근 '가짜 주장'
세계 광역화 및 지역 균형발전은 ‘통합’ 아닌 ‘연합’에 기초해야
독선의 정부, 졸속 입법 강행 국회는 국민이 감시하고 견제해야
이달 3월 11일과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사고 의료인의 형사기소 제한 특례 등을 신설하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불과 한 달 전인 2월 초 당정 합의안으로 발의(김윤의원 대표발의)된 이 개정안에 대해, 정부가 3월 중순(16일과 27일)에 토론회 개최 등을 예정하고 있는 와중에 기습 처리된 것이다.
한국 의사집단이 의료사고 시 의료인 형사처벌 면제를 요구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지난 윤석열 정부는, 의대증원을 추진했을 때, 정부 차원에서 의료인 형사처벌 면제를 당근으로 내밀었다.
의료계는, 필수의료 의사 부족이 과도한 사법리스크 부담 때문이라며 형사기소를 면제해줄 것을 요구해 왔지만, 이 요구는 필수의료 의사 부족 문제가 나타나기 전부터 의료계의 오랜 민원 사항이었다. 그리고 필수의료 의사 부족이 과도한 사법리스크 부담 때문이라는 의사들의 주장은, 경실련(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에 따르면, 정부 의료개혁특위 과정에서 시민환자단체의 요구로 실시된 정부의 연구조사에서 근거없는 ‘가짜 주장’임이 드러남으로써, 추진 동력을 잃었다.
정부는 의료개혁특위를 마무리하면서, 추후 국회의 법개정 심의과정에서 충분한 사회적 논의를 약속했다. 그러나 3월 중순(16일과 27일)의 토론회 개최를 앞두고, 다수 민주당의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는 의료인의 형사기소 제한 특례 등 신설 개정안을 기습 통과시킨 것이다.
경실련은, 국민과 환자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치명적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음에도 충분한 논의 없이 지방선거 전에 일사천리로 법안을 처리하려는 것은 정치적 술수에 불과하다는 점, 환자의 안전을 위협하고, 재판할 권리를 침해해 위헌 소지가 큰 법개정 사항을 절차적 정당성도 확보하지 않고 밀실 추진한 국회와 정부의 행태를 비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문제는 국민을 백안시하는 이 같은 정부 및 국회의 짓거리가 관성적으로 자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해 12월 대통령 이재명이 지역 간 행정통합을 종용하면서, 올 2월 말까지 국회에서 입법하고 6월 지방선거에서 통합단체장을 뽑자고 제안한 것이 그러하다.
다시 경실련의 분석에 따르면, 행정통합이란 행정구조를 근본적으로 교란하는 중차대한 사안이다. 이것을 대통령 이재명이 나서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두 달 만에 국회에서 법안을 후딱 통과시키라고 주문한 것이다. 이재명은 지역민의 행정통합 반대를 작은 이익에 연연하는 것이라 매도했고, 반하여 행정통합은 대의 공익을 위한 것이라 지레 규정했다.
갑자기 뒤통수를 얻어맞은 지역 공직자 및 지역민들이 여기저기서 반발하고 나서는 가운데, 현 정부 지방시대위원장 김경수가 부산으로 내려와, 주민투표 없이 지역의회에서 결정해 추진하면 될 것이라고 사주했다. 주민투표 하는 데 돈이 드니, 돈 안 드는 의회의 결정으로 가름하자고 한 것이다.
광주·전남 통합 과정에서는 그 시·도 의회의 결정마저 생략하고, 국회에서 먼저 발의 입법한 다음 거꾸로 시·도 의회의 동의를 종용하여 받아냈다. 주민투표는 고사하고 시·도 의회의 입지마저 중앙 정부 및 국회의 간섭에 의해 형해화해 버린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중앙정부가 지역정부에 대해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준)직접민주정치 스위스의 상황과는 정반대가 된다. 스위스 연방정부를 구성하는 26개 주(칸톤)는 독립된 헌법과 정부, 의회, 재판소 등을 따로 두고 있는데, 엄격하게 헌법에 규정된 경우 외에는 중앙의 연방정부가 지역정부에 개입할 수 없다.
스위스는 시민 각자가 무기를 사서 소지하고, 집집마다, 마을마다 방공호 등 방어체제를 구축하고 자위권을 스스로 행사한다. 이런 민병 형식의 무장은 수백 년 오랜 세월에 걸친 저항의 역사에 기원을 두고 있다. 스위스 국민의 자체 무장은 지역에 대한 중앙정부의 관료적 개입을 차단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민주정치는 이론, 말, 입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라, 무장 등 현실적 힘에 의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스위스에서 볼 수 있다.
스위스의 분권적 민주, 합의 민주, 다수결 민주정치는 상의하달이 아니라 하의가 상달되는 분권적 구조에 입각해 있다. 또 경찰, 검찰이 치안을 잘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각기 자체무장한 시민이 스스로 자신을 지키고 질서를 유지한다. 각자가 총기를 소지하고 있어도 스위스에서는, 미국과 달리, 총기사고 한 번 일어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실은 그만큼 사회적 불평등 등에 기인한 불안 요인이 최소화한 사실을 보여준다.
반면, 한국 위정자들은 입으로 국민주권을 떠들면서, 실제로는 국민을 ‘입틀막’하는 데 이력이 났다. 정부와 국회가 특정 이익집단의 이해에 편승하여, 의료인 형사면책특레법을 기습통과 시킨 것, 시·도 의회의 동의도 얻지 않고, 중앙 국회에서 먼저 행정통합법을 발의 통과시킨 다음 지역을 몰아붙인 것 등은 그 명백한 증거이지만, 이는 조족지혈의 사례에 불과하다.
근 40년 만에 개헌을 하자고 하면서, 입으로 떠들어대는 국민주권이 무색하게도, 그 개헌에 국민의 목소리는 생략되었다. 우선 정당을 전면에 부각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대통령 이재명은, 개헌을, 여야가 할 수 있는, 쉬운 것부터 하자는 원칙을 천명했다. 5.18 등을 헌법 전문에 넣는 것은 여야가 이견이 없을 것이니, 그런 것부터 하자는 것 등이 그러하다.
여기서 문제는 개헌의 시기와 내용을 결정하는 것이 누군가 하는 점이다. 40년 만의 개헌을, 왜 여야 합의 가능한 쉬운 것부터 해야하는 것인지, 왜 졸속으로 6월 지방선거에 맞추어 해야 하는 것인지부터 문제 제기되어야 한다.
입으로 국민주권을 외치는 이재명에게 그 국민은 언제나 찬밥 신세이다. 이재명이 이해한 정치는 우선적으로 정치인이 하는 것이라, 국민은 우선순위에서 뒤처진다. 국민은 궁극적, 즉 나중에 오는 것으로 유보되기 때문이다. ‘현재’로서 국민은 정치적 존재가 아니다.
그래서 이재명 정부는 모든 것을 국민이 아니라 정치인이 결정한다. 6월 지방선거에서 개헌을 해야 하니, 일정이 빠듯해서 5월 초까지 여야 합의에 의한 법안을 발의해야 한다든가, 5.18의 헌법전문 수록에 더하여 지역균형발전 관련 내용이 들어가야 한다든가 하는 것이 그러하다.
개헌 일정이 촉박하다든가, 여야 합의 가능한 것부터 하자는 담론에는 중대한 하자가 깔려 있다. 첫째, 개헌의 주체가 국민이 아니라 위정자라는 것, 둘째, 개헌의 시기도 위정자의 필요에 따라 산출된 것이라는 점이다. 여기에 국민의 존재는 망각되고 있다. 국민이 제외된 개헌 담론이 갖는 치명적 함정은, 그 어떤 하자에도 불구하고, 헌법은 국민의 뜻에 따라 수정할 수가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권력 구조상 국민은 정치에서 완전히 배제되어 있고, 들러리로만 존재한다.
1987년 헌법이 40년을 내리 수정되지 않고 내려온 것은 위정자들이 헌법개정을 막아왔기 때문이다. 이렇듯 경직된 헌법을 반세기 가까이 내려오도록 붙들고 있었던 것은 혹여 기득권을 해치는 법안이 도입될 것을 두려워한 위정자들 탓이다. 이런 어처구지 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은 결국 국민을 배제한 비민주적 권력 구조 탓이다.
스위스에서는 1년에 평균잡아 3~4번 개헌을 한다. 많을 때는 1년에 7~8번도 개헌 한다. 국민이 수정이 필요하다고 발안하면 바로 국민투표에 붙인다. 번거로움이나 선거비용을 걱정할 필요도 없다. 일정기간 동안 우편으로도 투표용지를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헌에 필요한 서명인 수는 유권자 10만 명(전체 유권자의 약 2%)이다. 뿐 아니라 아예 1년에 4회 정기적으로 개정할 것이 있는지 등 의견을 수렴한다.
한국에서 위정자들이 앞서서, 6월 지방선거에서 지역 통합단체장을 뽑아야 하고, 시간이 촉박하니 언제까지 법안 통과시켜야 한다든가, 그 지선에서 개헌을 동시에 해야하니, 5월 말까지 여야 합의해서 법안 통과시켜야 한다고 설쳐대는 것은 스위스의 민주정치와는 판이하게 거꾸로 간다. 의견수렴하겠다고 정한 토론회 일정을 불과 사나흘 앞두고, 국회 보건복지소위에서 의료인 형사면책특례법을 기습 통과시키는 행태는 국민을 개돼지로 백안시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해 불가능이다.
이렇듯 국민을 정치에서 배제한 위정자들이, 이번 개헌에 지역 균형발전 관련 내용을 넣겠다고 한다. 현 정부 및 국회에서는 균형발전을 5극3특과 관련지을 것이고, 또 그것은 지역 행정통합과 관련되는 것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현 정부가, 균형발전이 행정통합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양 이해하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각 지역의 소리를 들으려 부지런히 다니는 이재명은 ‘충남의 소리를 듣다’에서, “세계적 추세가 광역화인데, 그것은 지역 간 연합을 통해서 할 수도 있겠으나, 통합이 더 바람직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연합’보다 ‘통합’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은 이재명식 독선이다. 세계 광역화의 확실한 추세는 오히려 ‘통합’ 아닌 ‘연합’이다. EU(유럽연합)는 ‘연합’이지 ‘통합’이 아니고, 각 주(칸톤)가 독립한 스위스는 연방이지 행정통합 단위가 아니다.
독선의 정부, 졸속의 입법을 강행하는 국회는 국민이 감시하고 견제해야 한다. 그것은 국민발안제를 제도화하고, 사람을 선출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닌, 구체적 안건에 대한 국민투표제도를 제도화하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차기 개헌에서는 국민발안권이 그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