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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 칼럼] 시민을 위한 사법개혁 노트 - 우리는 왜 사법부의 독립을 절대선으로 믿게 되었을까?

최자영 | 입력 : 2026/03/16 [08:49]

루소 3권은 입법권, 집행권, 동맹권

몽테스퀴외 3권은 입법, 만민법 집행권(외교), 시민법 집행권(내치)

루소와 몽테스퀴외 사법 권력은 독립기관이 아니라 집행권(행정)에 포함

몽테스퀴외의 재판 권력은 상설 특별기관이 아니라 일반인 중 선출된 사람이 행

로크와 루소의 3권분립에는 사법 권력이 없다

 

이 글은, 하루하루가 너무나 고달프고 바쁜 독자들을 위해, ‘사법부의 독립이란 허상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적은 것이다. 사법권이 독립해야 한다는 우리의 상식에 대한 의문부터 제기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로 입법·행정·사법의 3권분립을 말한다. 특히 사법부의 독립은 마치 손대서는 안 될 성역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이 믿음은 과연 역사적 사실일까. 사실은 사법부가 독립한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사법부의 독립을 절대선으로 믿게 되었을까?

 

우리는 언제부터 사법을 전문가의 영역으로만 생각하게 되었을까? 왜 법치는 시민의 참여가 아니라 법원의 권위로만 유지된다고 믿게 되었을까? 사법개혁의 출발점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이 믿음이 정당한 것인지를 다시 묻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판사 수를 늘리거나 법왜곡죄도입 등 제도를 미세 조정하는 데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여기서 로크와 몽테스퀴외의 권력분립 이론을 참조할 수 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정부 권력을 크게 입법과 행정으로 나누었다. 행정은 입법부에서 만든 법에 따라 집행하는 권력이고 법률을 어긴 이를 단죄하는 권력, 즉 사법권을 포함한다.

 

몽테스퀴외는 ‘3권분립의 창시자로 불리지만, 그의 3권에는 사법 권력이 없다. 몽테스키외는, 한편으로, 입법, 행정, 사법의 3권 가운데 사법을 무효한 것으로 지우고, 입법과 행정으로 구성된 것으로 여긴다. 다만 행정 상 집행권이 외교와 내치로 세분될 뿐이다. 루소의 3권은 입법권, 집행권, 동맹권이고, 몽테스퀴외의 3권은 입법, 만민법의 집행권(외교), 시민법의 집행권(내치)이다. 여기에 독립된 사법 권력의 사법부는 끼이지 않는다.

 

몽테스키외는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는 의미의 독립된 사법부를 주장한 적이 없다. 오히려 그는 사법권이 특정 직업집단이나 계층에 고정되는 것을 두려워했다. 사법이 정부 권력이 되는 순간, 시민은 판결이 아니라 판사를 두려워하게 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현재 프랑스와 독일에서 법원, 검찰 등 사법 권력은 행정부 관할이다. 미국 헌법 어디에도 ‘3권분립이라는 표현은 없다.

 

 

몽테스키외는 왜 사법 권력을 시민에게 맡기려 했는가

 

몽테스퀴외의 ‘3권분립에는 사법 권력이 없다. 몽테스퀴외는 사법 권력이 정부의 독립된 상설 기관에 의한 것이거나, 특정 계층이나 직업집단의 소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사법 권력의 남용, 횡포를 우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법권을 일면 무효한 권력이라 표현한 것은, 정부의 권력 구조에서 독립된 사법부를 두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몽테스키외가 이상적으로 본 영국의 사법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사법부와 달랐다. 영국 사법의 중심에는 시민 치안판사와 배심이 있다. 법률 전문가가 아닌 지역 시민들이 무급으로 재판에 참여하고, 전체 사건의 대부분을 처리한다. 이들에게 중요한 기준은 법 조문보다 상식과 공동체의 경험이다.

 

영국에서 말하는 법의 지배란 사법부의 지배가 아니라, 입법의 의회와 법을 감시하는 시민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시민이 선출한 배심과 지역 시민들에 의한 영국의 재판은 정부 권력의 일부라기보다 시민 사회의 기능에 가까웠다.

 

몽테스퀴외는 사법의 독립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사법의 비권력화, 다시 말해 사법을 정부로부터 떼어 시민 쪽으로 되돌리려 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강한 사법부가 곧 자유의 보루라는 믿음은, 몽테스키외의 사상과는 거리가 있다.

 

사법개혁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사법부를 독립기관으로 더 단단하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시민의 손으로 돌리는 과정이어야 한다.

 

 

법관 인력난 해소의 다른 길”, 영국에는 비정규 판사가 있다

 

한국의 법원은 늘 바쁘다. 사건 수는 많고, 판사는 부족하다고 한다. 그래서 상고를 제한하자는 말이 반복되고, 재판받을 권리는 효율이라는 이름으로 줄어든다. 그러나 시선을 영국으로 돌리면 전혀 다른 풍경이 나타난다. 영국은 전업 판사가 많지 않지만, 사법은 멈추지 않는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비정규직 판사 제도다. 영국에는 대리 판사라 불리는 비상근 법관들이 있다. 이들은 연간 일정 기간만 재판에 참여하며, 사건이 몰릴 때 정규 판사를 보완한다. 사법을 하나의 평생 직업으로 독점하지 않고, 필요한 만큼 유연하게 운영하는 방식이다.

 

더 중요한 것은 시민 치안판사 제도다. 영국의 치안판사는 법조인이 아니라 지역의 일반 시민이다. 대부분 무급으로 봉사하며, 경미한 형사 사건과 생활 분쟁을 맡는다. 놀랍게도 이들이 처리하는 사건은 전체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재판은 법률 기술의 경연이 아니라, 공동체의 상식과 경험에 기초해 이루어진다.

 

이 구조에서는 사법이 법관 개인의 권위에 기대지 않는다. 사건은 빠르게 처리되고, 법원은 과부하에 걸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시민은 사법을 먼 권력이 아니라 참여 가능한 제도로 인식하게 된다.

 

한국 사법의 문제는 판사가 적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재판을 소수의 전업 판사에게 맡기고, 시민을 철저히 배제한 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상고를 막는 데 있지 않다. 사법을 다시 나누는 것, 즉 시민과 공유하는 데 있다.

 

 

법치의 주인은 독립된 사법부가 아니다

 

법치주의는 흔히 사법부의 독립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법을 만드는 것은 법원이 아니다. 법은 국회가 제정하고, 행정부가 집행하며, 시민이 해석하고 감시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사법 권력은 집행 권력으로서의 행정부와 시민에게 속해야 한다. 여기에 독립기관으로서의 사법부, 전문 법조인의 사법부는 존재할 수 없다.

 

영국과 미국의 사례가 보여주듯, 법치는 전문 법관 집단의 권위에서 나오지 않는다. 시민 배심과 치안판사, 공개된 증거 절차는 사법을 정부 권력으로부터 떼어 시민의 판단에 가깝게 두려는 장치들이다. 이 사회들에서 중요한 것은 강한 사법부가 아니라, 권력이 시민의 손, 그 감시에서 멀어지거나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구조이다.

 

한국에서 사법개혁 논의가 늘 막히는 이유는, 사법을 고립된 영역으로 다루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법은 행정과 분리될 수 없고, 중앙 권력과 지방 권력의 구조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권력이 중앙에 집중될수록, 재정과 행정이 위로 쌓일수록, 시민의 감시와 참여는 형해화한다.

 

사법개혁의 핵심은 판결의 독립이 아니라 판단의 개방성이다. 시민이 사법 과정에 참여하고, 행정과 재정의 흐름을 감시하며, 지역 단위에서 권력을 견제할 수 있을 때 법치는 작동한다. 법치란 통치의 기술이 아니라, 시민이 자유를 지키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제 질문은 이것이다. 사법을 더 멀리 둘 것인가, 아니면 다시 시민 곁으로 데려올 것인가. 그 선택은 제도가 아니라, 우리의 의식에 달려 있다.

 

참조. [최자영 칼럼] 다시 씌어져야 하는 3권분립론, 몽테스퀴에의 3권분립에는 사법권이 없다(한가람뉴스플러스, 202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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