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모든 사람을 다 위해주려는 것은 비민주적 가부장주의
혼자서 다 잘한다고 믿는 것은 비현실적 착시의 영웅주의
가장 경계할 것은 무능이 아니라 권력집중에 의한 부정부패와 독재
개헌은 대통령 4년 중임(연임)제가 아니라 국민발안권 우선해야
설 명절을 맞아 민주당이 “설 명절 민심의 무게가 참으로 무겁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민생 회복의 버팀목이 되겠다”, ”국민 여러분이 겪으시는 고단함에 무한한 책임을 통감한다”, “민생은 구호가 아니라 실적이어야 하며, 정치는 탄식이 아닌 안심을 드려야 한다” 등 소회를 밝혔다.
위 글에서 행위의 주체는 국민, 주민이 아니라 민주당이다.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것도, 버팀목이 되는 것도, 책임을 통감하는 것도, 안심을 드리는 것도 민주당이다. 여기에 국민이 해야할 일은 없다. 국민은 채찍질하고, 책임 통감하고, 안심을 드리기 위해 무엇을 하지 않아도 된다. 민주당이 다 해준다고 하기 때문이다.
이런 민주당의 소회는 두 가지 함정을 파고 있다. 첫쩨, 국민이 도우지 않고 민주당이 어떻게 다 하겠다는 것인지가 오리무중이다. 민주당이 수퍼맨이 되지 않고서야, 국민의 협조를 구하지 않고서 어떻게 당이 이 모든 것을 다해서 국민에게 뭘 떠먹여 준다는 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둘째, 민주당이 이 같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 국민은 아무런 대책이 없다. 왜 약속을 지키지 않느냐고 따지고. 또 제것을 찾아올 수 있는 아무런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더구나 정권이 바뀌어 다시 윤석열이나 그 같은 독재를 추종하는 장동혁 같은 이가 정권을 잡게 되면, 국민과 나라는 다시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을 담보한 것이다.
‘국민에게 안심을 드린다’는 기치 아래 민주당은 권력의 통합과 집권을 기획하고 있다. 이른바 ‘지방 살리기’란 구호 아래, 시⸱도를 병합하여, 중앙 권력의 하수인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지역주민의 의견은 통째로 무시하고, 그 주민은 홍보와 설득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뭐 중앙의 재정권, 행정권을 지역으로 넘겨주겠다고 하는 것 같은 행색을 하더니만, 정작 통합행정법에서는 지역에서 요구하는 권한을 중앙 행안위에서 삭제해버렸다고들 한다.
국민, 주민은 정치적 발언권을 탈취당하고 있는 중이다. 그나마 문재인 정부 때 겨우 기초를 깐 지역자치법이 무색하게 후퇴할 기로에 처했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갈수록 태산이다. 윤석열을 피하는가 했더니, 행정과 국회의 독재가 시작되었다. 자치를 말살하는 중앙집권의 시도가 대통령과 총리의 독촉 아래, 국회와 지역의회를 중심으로 전광석화같이 진행되고 있다. 여기에 국민, 주민의 목소리는 배제되었다.
이 모든 것이 “국민에게 안심을 드리기” 위해서, 그리고 “소멸해가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서” 진행되고 있다. 이런 명분하에, 정작 국민, 주민은 정치적 발언권을 빼앗기고, 자치권을 말살당하고 있다.
우원식(국회의장)이 나서서 개헌을 한다고 하는데, 어떤 내용으로 개헌을 할 것인지는 불문에 붙이고, 국민투표법만 개정하겠다고 한다. 형식만 고치고, 내용은 이미 복안이 마련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그가 떼창하던 대통령 4년 중임(연임)제와 내각제로 귀결될 전망이 십중팔구이다.
그 대통령 4년 중임제가 어디로 튈지는 미지수이다. 논객 정규재에 따르면, 대통령 재선, 3선 가능하도록 개헌을 해서, 이재명이 박정희같이 한 20년 독재하면, 대한민국이 엄청 발전할 것이라고 한다. 현직 대통령이 개헌의 득을 볼 수 있도록 개헌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말이다.
현직 대통령이 연임조항에서 배제되면, 그다음은 이재명이 아니라 윤석열 같은 이가 다시 올라올 수도 있겠다. 누가 되든, 대통령 4년 연임을 위한 개헌에는 위험부담이 따른다. 연임하던 이가 다시 3선, 4선을 위한 개헌을 하고, 다시 그 지배가 20년을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행정통합, 개헌이 국민의 입을 막은 가운데, 중앙 국회, 지역의회라 깃대를 올리고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이 민주국가가 아니라 국회, 의회 등 대의제 중심의 과두체제라는 것이 명백히 밝혀지고 있다. 이것은 국회의 독재이다.
차제에 양희삼 목사가 작사, 작곡한 「든든한 돌 되리」가 구정 설을 맞아 삼천리에 울려퍼졌다. 그 노래는 위 민주당의 소회와 정확하게 같은 맥락에 있다. 대통령 이재명이 국민에게 무엇을 다 해주겠다고 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그저 가만히 있으면 된다. 그 대신 입을 벌리면 안 되고, 닫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노래의 주인공은 이재명이다. 그는 국민이 “괴로울 때는 앞장서고, 모두가 즐거울 때는 뒤에서 뒷바라지하겠다”고 한다. 국민이 괴로우면, 누가 나서서 막아주기를 바라면 안 되고,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세상 이치가 그러하다.
재수가 좋아 앞에 나서서 도와주는 이가 있는 것은 다행이지만, 항상 그런 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국민은, 여차하면 스스로 앞에 나설 수 있도록 평소에 저항력을 길러야 한다. 도와 준다고 해놓고 사기치는 이도 있고, 또 앞에 나선 이가 실수할 때도 있다. 그러면, 국민은 감시도 하고, 또 앞에 있는 자를 돕기도 해야 한다. 그냥 믿고 두 손 모아 잡고 있으면 안 된다.
또 노래 가사에, “국민의 염원, 당원의 소망을 따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꼭 만들겠다”고 한다. 그 만드는 주체는 국민이 아니라, 이재명으로 빙의된다. 문제는 그가 약속을 지키지 못했을 때에 대한 대책이 여기에 없다는 점이다.
이재명이 재선, 3선을 했다고 치자. 혹은 박정희같이 20년 독재를 했다고 치자. 그 다음 국민은 어떻게 하나? 다시 이재명 같은 이를 기다리고 있어야 하나? 아니다. 유능한 이가 나와 잘한다고 해도 국민은 항상 감시의 권한을 제도적으로 갖추고 있어야 한다. 지금같이, 정부와 국회가 일심으로 행정통합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발언권을 빼앗기고 자치를 말살당하고 있으면 안 되는 것이다.
「든든한 돌 되리」에서는 내 삶을 바치는 것, 세상 밝히는 것, 천 번의 시련을 거친 것도, 함께 사는 세상 만드는 것, 그대의 눈물을 닦는 것도, 다 한 사람 이재명이다. 한 사람이 다 하는 것을 쉽게 말하면, ‘독재’라고 일컫는다.
이재명은 자기가 아니라 당신(국민)을 위해 살았고, 당신(국민)께 모두 바쳐도 감사한 일, 그는 그대(국민)의 도구, 그의 땀을 다 드려 약속한 내일을 (국민께) 드리리, 더 줄 게 없어 아파하고, 거친 길 혼자 걷다 울었지만, 이제 그대(국민)만 보여 울고, 온 세상 그(이재명)를 막아도, 이 땅에 든든한 돌 될 것이라고 한다.
문제는 한 사람이 무엇을 다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리 유능해도 그러하다. 서로 도와서 이루어야 하고, 또 권력은 행여 잘못 행사되지 않도록 감시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지금 행정통합이란 미명하에 하는 짓을 보면, 국민은 정치 발언권과 지역자치를 뻔히 두 눈 뜨고 빼앗기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고, 다수의 입을 막는 것을 두고 독재라고 한다.
대통령 이재명이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잠을 설친다고 한다. 이것이 박정희를 빼닮았다. 박정희가 국민들 생각하느라 밤잠을 설치고 눈물 흘렸다고 한다. 밤잠을 왜 설치나? 혼자서 잘나서,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다 하려고 하니, 밤잠을 못 자고 설치는 것이다.
다 제 할 일을 제각기 할 수 있도록 남에게 두루 나누면. 혼자서 그렇게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된다. 또 일을 남보다 많이 한다고 좋은 것만도 아니다. 혼자서 모든 사람을 다 위해주려고 하다 보니, 부수적으로 권력의 집중이 발생한다. 혼자 하고 권력을 모으는 것은 필히 독재로 길을 튼다.
당장에 못 한다고 혼자 나서려 할 것 아니다. 못 하는 이는, 눈높이에 맞게, 다음에 잘할 수 있도록 수련의 장을 제공해줘야 한다. 경계해야 할 것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부패하고, 권력을 농단하는 것이며, 그것은 민중 시민의 감시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은 관료주의, 독재 체제에서 만연한다.
든든한 돌다리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훨씬 좋지만, 그것만 믿고 태무심할 수가 없다. 그 돌다리가 없어지거나 변질될 가능성을 경계하기 위해서, 국민이 감시할 수 있도록, 정치적 발언권을 확보해야 한다. 독재의 출현을 막기 위한 교두보가 제도화되어야 한다. 이른바, ‘1개 사안(원포인트) 개헌’에서는 대통령 4년 중임(연임)제가 아니라 국민발안권 제도화가 우선되어야 하겠다.
혼자서 마음먹고 노력하면 뭐든 다 될 것 같은 착각은 비민주적 가부장주의, 비현실적 영웅주의이며, 국민, 시민, 민중을 하릴없이 무기력하게 만든다. 양희삼 목사(작사, 작곡), “든든한 돌 되리” 가사 일부를 아래에 소개한다.
든든한 돌 되리 (양희삼 작사, 작곡)
나의 삶 당신께 바쳐 세상 밝힐 수 있다면,
내게 천 번의 시련이 있어도 함께 사는 세상 만들리
내 가진 것 무엇이 귀하리, 그대의 눈물을 닦을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살았으니 당신께 모두 바쳐도 감사한 일
이제 나는 그대의 도구, 내 모든 땀 다 드려 약속한 내일을 드리네. 더 줄 게 없어 아파하네
거친 길 혼자 걷다 울었지만, 이제 그대만 보여 웁니다
온 세상 나를 막아도 이 땅에 든든한 돌 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