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조인 법기술 아닌 시민의 일반 상식에 의거
영국, 시민 치안판사법원이 사건 80% 처리
사법개혁은 시민 의식의 변화가 동반돼야
고전기 아테네, 시민의 기소가 없으면 살인도 사건이 안 돼
고대 그리스에서는 시민의 민회 이외에 다른 정부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민이 기소권과 재판권을 다 가지고 있었다. 사인(私人)이 기소하지 않으면 송사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공적, 사적 사안을 불문하고 그러하다. 살인사건도 문제를 제기하여 기소하는 이가 없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재판은 물론 기소 단계부터가 철저하게 당사자주의에 입각했던 것이라 하겠다. 이런 상황은 시민단으로 구성된 민회가 국가 최고의 결정기구이며, 근대국가의 정부 권력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던 데 기인한다. 전쟁, 강화, 항복은 물론, 기소와 재판 등이 죄다 민회에서 시민의 결정에 이루어졌다.
근대국가와 같은 중앙 정부 공권력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테네에서는 시민권도 각 가정에서 적자로 인정됨으로써 성립하는 것이었다. 시민권이란 도시가 필요로 할 때 인적 봉사(병사로 근무, 민회 참석), 물적 기여(도시에서 필요로 하는 각종 부담)를 감당하는 의무의 주체를 뜻하며, 그 봉사의 대가로 시민권자는 평시에 면세 특권을 갖는다. 정치를 움직이는 주도권이 정부나 관료가 아니라, 각 가정과 개인 시민 혹은 그 모임에 있었다는 점에서, 아테네 민주정치는 이른바 ‘풀뿌리 민주정치’의 구현이었다.
민중이 주도하는 고전기 아테네의 이 같은 민주정치는 정부의 권력이 다소간 존재하는 근대국가에서는 흔하지 않다. 예외적으로 스위스의 각 마을 단위로 시행되는 자치제도가 그러하다. 분권에 입각한 각 지역의 주권은 고전기 아테네 민주정치의 핵심이었다. 흔히 고전기 아테네 민주정치 하면, 아테네 도심(아크로폴리스 주변)에서 열린 민회만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런 것이 아니라 곳곳에서 시민의 민회(데모스)가 개최되었다. 아테네는 아티카 반도에 산재한 30개 데모스(행정구역으로서의 촌락)로 구성되고, 그 각각에 도심의 민회와 같은 기능의 민회가 개최되었다. 도심의 민회는 전국에 걸친 의제를 다루는 곳이었고, 각 지역 고유의 의제는 각 지역의 민회가 독립하여 처리했다. 아테네 민주정치는 철저하게 분권에 입각한 것이었다.
사법권력도 각 지역단위[행정촌락(데모스) 혹은 부족(필레)]로 행사되었고, 아테네 도심의 법정(디카스테리온 dikasterion)은 전 도시에 걸친 공동의 의제나 각 부족간의 분쟁 등을 다루었다. 고전기 아테네의 재판은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가 있다. 하나는 본안 소송으로 가기 전의 중재재판(부족마다 40명의 중재재판관이 있었다), 다른 하나는 기소 이후의 본안 재판이다. 본안 재판의 경우에도 재판관의 구성과 수가 사건의 성격에 따라 달랐다.

고대 아테네 아고라 일대의 유적. 멀리 언덕위에 아크로폴리스가 보인다. @최자영
일본의 중재 활성화는 그리스 사법제도 닮아
소송이 재판에 회부되기 전 이루어지는 중재의 현대적 사례는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크고 작은 모든 사건이 관료 법관의 손을 거치는 것이 아니다. 법원의 소송 절차로 넘어오기 전에 웬만한 사건은 거의 중재로 해결한다. 일본은 중재의 천국으로 알려져 있다. 그 중재는 법원이나 정부 조직이 아니라 사적으로 평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이런 중재 제도를 통해 법원과 법관 관료가 초래할 수 있는 권력의 오남용을 미연에 방지하고, 또 법원 자체의 일거리를 줄인다. 시민 간 중재는 집권이나 관료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고, 시민의 자발적 소통을 극대화한 것으로서, 민주적 사법제도의 첩경이다. 정부 관료가 개입하지 않고 평등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사적인 중재는 고전기 그리스의 민주적 사법제도의 속성을 닮은 것이다. 이것은 시민의 주도권이 정부 관료에 선행하는 한 반증이다. 중앙이 아니라 지방에서 예산을 짠다. 중앙은 지반 간 불균형을 맞추어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맡는 곳이다.
한편, 본안 소송의 재판에서 고전기 아테네에서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재판소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분쟁 쌍방 간의 합의에 따라 쌍방이 동의하는 소수의 재판관으로 법정이 구성되는 것이다. 한 예로, 51명의 에페타이 재판관으로 구성된 법정이 대표적인데, 이것은 흔히 헬리아이아 재판소로도 불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공적 현안이나 그 외 사적 분쟁의 재판소인데, 여기서는 재판 당일 무작위 추첨으로 재판관이 뽑히며, 재판관 수의 규모도 사건의 중요도에 따라, 201, 301, 501, 1001명 등으로 달랐다. 이들 민중 재판소는 ‘디카스테리온 (사인 간 ‘디케[권리]를 다투고 가리는 곳)’이라 불렸다. ‘헬리아이아’ 재판소는 그 실체에 대해 명확하게 규정하기가 어렵다)
여기서 아테네 민주정치에서 민회와 의회 간 권력관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민회와 재판소 등을 주관한 민중이 결정권을 가졌고, 500인 의회는 민회의 결정을 시행하는 집행기구였다는 것이다. 의회는 10개 부족에서 50명씩 500인으로 구성되며, 각 부족이 1년 열 달 중 한 달씩(36일 정도) 행정부를 구성했다. 1년에 행정부가 10번 바뀐다. 의회는 입법권이 없으며, 민회에서 입법할 사항을 미리 준비하여 넘기고, 결정된 사항을 시행했다. 민회에서는 의회에서 올라온 안건 이외에 자유롭게 의안을 제출하고 토론에 부치고 결정할 수 있었다. 재판소의 운영과 재판관의 구성은 전적으로 민회에서 민중이 정한 조령에 따라 운영된다.
이러한 고전기 아테네 민주주의의 사법제도의 뜻과 형태는 영미법계, 대륙법계 모두에 남아 있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정부 관료의 사법권력을 최소화하고, 가능한 한 시민 민중이 전면에 배치되는 것, 둘째, 특정 법조인의 교육이나 경력이 아니라 상식에 의거하여 판결을 도출하는 것이다. 전자에 관련한 것으로는, 정부 권력이 개입하기 전에 평등한 시민 간의 조정 및 중재를 통해 사건 해결의 실마리를 찾도록 하는 것, 기소와 재판에서 시민의 역할을 다소간 제도화하는 것, 권력구조에서 중앙집권을 지양하고 지역분권을 도모하는 것 등이다.
영미법계의 배심제도, 영국의 치안판사제도, 그리고 대륙법계의 독일, 프랑스, 대만, 일본의 참심제는 시민이 기소 혹은 재판에 참여하는 점에서, 일면 고대 그리스 민주정의 사법제도를 닮은 데가 없지 않다. 또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 있는 사인소추권(검찰 등이 기소를 하지 않을 때는 사인[私人]이 보충적으로 기소할 수 있다) 제도도 그러하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 제도화된 사인(시민)소추(기소)권
영국, 프랑스, 독일 등에서는 민사뿐 아니라 형사에서도 사인(시민)이 소추(기소)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정부 관료 위에 국민 개개인이 주권자로 존재한다는 사실의 현실적 구체화이다. 정부 관료가 기소하지 않는 경우, 개인이 직접 형사 기소를 할 수 있다. 편의상 정부 관료가 대리하되, 그 대리가 미흡할 때는 언제라도 주권자 개개인이 보충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 것이다.
한국 검찰이 안하무인의 권력기관화한 원인 중의 하나가 기소독점권이다. 이것은 국가 공권력을 개인 위에 올리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공기관 간 권력의 견제도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검찰공화국으로 치닫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 검찰개혁이라는 기치하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분리하고,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분리해내는 작업이 진행중에 있다. 그러나 이것은 궁여지책의 첫걸음일 뿐이다. 뭉쳐 있던 권력을 두 개로 분리한다고 해서, 그 각각의 권력이 바르게 행사될 것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검찰 등 관료 공직자가 국민 위에 군림하여 좌지우지하지 못하도록, 궁극적으로는 국민 개개인이 공권력의 행사를 수정할 수 있는 권한을 보유하도록 제도를 갖추어야 한다. 민주당 의원 정진욱(광주 동구·남구갑)은 기소권·수사권을 분리하기만 하면, 지검장 민선제 같은 것은 필요없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그렇지 않다. 검찰의 권력 오남용의 관행은 기소권 수사권을 분리한다고 해서 중단되거나 갑자기 정화될 리가 없을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공권력을 견제하는 방안으로서, 지검장 민선제는 물론 보충적 사인 소추권 제도 마련이 불가피하다.
시민이 재판하는 제도
시민이 재판에 직접 참여하는 제도로는 영국의 치안판사제도, 영국과 미국의 배심재판, 동아시아에서는 일본, 대만, 북한 등의 참심재판 등이 있다. 영국에는 치안판사(Justice of the Peace; Magistrate)로 구성되는 치안판사법원이 따로 있다. 치안판사에는 유급과 무급이 있다.
치안판사는 원래 국왕의 특사 또는 비법률가인 시장. 촌장 및 장로의원 등이 겸직하는 무급의 명예직이었다. 이러한 전통에 따라 오늘날에도 치안판사는 일부 대도시에 있어서의 유급치안판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무급이다. 지방의 치안판사는 전문적 법률지식을 갖추고 있지 아니하므로 5년 이상의 변호사 경력을 가진 배리스터(사무변호사) 또는 쏠리시터(법정변호사) 중에서 선임된 서기(clerk)의 조언을 얻어 업무를 처리한다. 반면, 대도시에서는 7년 이상의 변호사경력을 가진 배리스터 또는 쏠리시터 중에서 (Chancellor)의 추천에 의해서 국왕이 임명하는 유급의 전임치안판사(Stipendiary Magistrates)를 배치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치안판사가 담당하는 1심에서 처리하는 사건의 비율이 전제 사건의 80%가 넘어 법질서의 근간을 형성한다는 점이 중요하다(영국 치안판사 법원:Magistrate's Court, 유급과 무급의 공존, 전체 형사사건의 80%, 2015~2016년의 경우 약 117만 건 처리). 치안판사법원의 판결에 대해서 불복할 때에는 지방법원 가사부(Family Division)로 상소하게 된다. 치안판사법원은 민사사건뿐 아니라 형사사건도 담당하게 된다.(참조: 이상윤, 영미법, 박영사, 2009, 90)
한편, 영미법에서는 시민이 기소여부를 결정하거나 재판에 참여하여 유무죄를 결정한다. 영국의 소배심제는 일단 대배심(기소여부를 결정하는 대배심은 현재 영국에서 폐지되고 예비심문절차[preliminary examination]로 이관) 혹은 검사에 의하여 형사피고인의 유무죄를 결정하는 것이다. 배심원의 자격은 일반배심재판제도에서 일반국민에게는, 특정 결격사유가 없는 한, 누구에게나 부여된다. 대배심이 폐지된 영국에서는 기소는 검사 혹은 사적 소추(개인이 기소)에 의한다. 미국의 배심제는 형사배심과 민사배심이 있다. 형사배심판제도에는 대배심제도와 소배심제가 있다. (연방)대배심의 기능은 기소(indictment)와 고발(presentment)이다. 미국 형사소송법상 기소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하나가 대배심이 행하는 ‘indictment(기소)’이고, 다른 하나는 검사가 행하는 ‘information(고소)’이다. 형사의 소배심제는 유무죄를 결정하고, 판사가 내리게 될 형량에 대해 의결을 제시한다.
한편, 미국의 민사배심판제도에서는, 제7차 개정헌법에서 “연방법원에 제기된 민사보통사(民事普通事)에 관하여 "보통법(Commonn Law)상의 소송에 있어서 소송가액이 20달러를 초과할 때에는 배심에 의한 재판의 권리를 인정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어 민사소송에 대한 배심재판을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제7차 개정헌법은 제6차 개정헌법과는 달리 주(州)에도 적용된다고 판시된 바 없다. 따라서 주정부는 민사소송에 있어 배심재판제를 채택하여야 하는 헌법상의 의무를 부담하지 아니하고, 민사사건에 있어서의 배심재판제의 인정 여부 및 그 절차 등을 재량으로 정하고 있다. 이렇게 당사자가 재심재판 권리를 포기할 수 있는 자유를 인정하고 있으므로 사실상 민사배심판제는 점차 감소되는 추세에 있다.
집권 혹은 분권의 권력구조가 사법제도에 미치는 영향
독일, 프랑스 등이 대표하는 대륙법계는 성속(교회조직과 봉건영주)의 지배권력하에 있었고, 특히 교회조직 및 교회법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교회의 보편적 조직은 로마제국의 관료주의 체계(로마 민법이 아닌 황제의 칙법)를 따온 것이었고, 그것은 훗날 근대국가, 특히 시민의 세력이 성장하지 못한 소련 등 공산주의 국가의 관료주의 체계로 흡입되었다. 중세 대륙의 교회는 분권적 영주 제후가 난립하는 틈서리를 비집고 들어 형법을 관장했고, 종교재판이라는 이름으로 마녀사냥을 통해 이단을 처형했다.
그러나 영국의 사정은 대륙과는 판이했다. 영국에는 두 개의 세력이 양극에 존재했는데, 하나는 지방자치 공동체가 온존한 것이고, 다른 한쪽에는 국왕에 의한 중앙집권의 시도였다. 영국 지방자치단체의 전통은 게르만족(5세기 앵글로 색슨 및 11세기의 노르만의 영국 진출)의 관습법에 기초한 것이다. 영국에서도 교회조직과 교회법이 있었으나, 세속 왕권에 압도되었다. 16세기 초 헨리 8세는 영국 국교회를 창건함으로써, 로마 교황청의 보편적 권위에서 탈피하여 종교조직을 세속권력 하에 종속시켰고, 수도원 재산을 대거 몰수함으로써 종교재단의 힘을 대거 약화시켰다. 왕권강화의 시도는 튜더왕조(1488~1603) 초기부터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프랑스와 백년전쟁에 돌입하면서 국왕 대권에 기초한 칙령을 발포함으로써, 보통법(Common Law)이 아닌 다른 법(형평법)을 적용했고, 보통법 법원에서 사용하는 재판절차와 다른 절차에 의거했다. 왕의 권위에 근거한 재판은 보통법에 의한 법의 원리와 충돌을 빚게 되었다.
그러나 왕권 강화와 형평법의 권위는 영국에서 자리를 굳히지 못했다. 엘라지베스 I세 여왕의 사망으로 튜더왕조가 종식되고 스튜어트 왕조(1604~1714) 개막되면서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잉글랜드의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며 절대주의 혹은 전제왕정에 대한 완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대륙법과 영미법 간의 차이는 이 같은 역사적 배경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대륙법계도 지역에 따라 상이한 점이 있으나, 후기 로마 제국의 관료조직과 황제의 칙법을 원용한 보편적 카톨릭의 교회조직과 교회법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 군부의 집권과 유럽 침략을 계기로 중앙집권이 가속화되었고, 그에 따라 법제 통일의 일환으로 나폴레옹 민법전(1904)이 편찬되었다. 상인(부르조아) 세력이 주도한 프랑스 혁명의 소산인 이 법전은 로마 민법을 그대로 원용한 것으로서, 중세의 관료주의적 교회법과는 계통과 성격을 달리한다. 교회법과 함께 로마 민법은 이탈리아 상업도시 볼로냐 등을 중심으로 꾸준히 계수되어 왔던 것이다.
반면, 독일의 형편은 프랑스와 영국과는 같지 않았다. 수많은 도시와 함께 영주제후국들로 분열되어 있던 독일은 시민보다 ‘융커’라 불리는 신흥지주의 향사들이 대세를 이루었고, 이들이 독일 군국주의의 인적 기반을 제공했다. 프로이센에 의한 독일 통일과 제2제국(1871~1918) 성립을 거치면서 강화된 군국주의 전통이 로마 황제의 칙법 및 교회법의 전통과 결합하면서, 법체계는 통치 권력의 아류로 쉬 전락해 버렸다. 제1,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미국, 영국, 프랑스 등의 연합군이 지배한 독일은 다소간 영미법의 영향을 받기에 이르렀다.
대륙법계의 프랑스와 독일에는 영국, 미국 등에서 보이는 시민 배심제도나 영국의 치안판사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시민 배심원이 판사와 함께 참여하여 유무죄 및 형량까지 평결하는 참심제(Cour d’assises)제로 운영된다. 이것은 지방자치단체나 시민의 힘이 사회적으로 성숙하지 않았던 전통의 권위주의 혹은 관료주의 전통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하겠다.
덧붙여, 동아시아에서 북한이 오래전부터 1심에서 참심제(1명 법조인, 2명 인민-시민)를 실천했고, 최근들어 대만과 일본이 참심제를 채택했다. 이들 나라의 사례를 한국에 그대로 쉬 이식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환경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대만은 토착사회의 전통이 원래부터 강한 곳이었고, 일본도 중세의 봉건체제 전통을 이어 지방분권의 전통이 강하다. 지역분권의 전통은 중앙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사회적 환경이 갖추어져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사법제도에 적용되면, 사법부의 관료주의를 견제하는 시민의 세력 확대로 쉬 연결될 수 있다.
특정한 자격을 요하지 않는 영국의 시민 치안판사제도나 영미의 시민 배심제도도 또한 그러하다. 법조인의 특정 법기술이 아니라 상식에 기초하여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고전기 아테네의 시민에 의한 재판과 닮았다.
한국은 이들 나라와 역사적 배경 및 사회적 환경을 달리하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겠다. 한국 시민 민중은 여전히 소극적, 수동적이고, 그 위에 정부 관료가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심제, 참심제, 치안판사제도 등의 구현은 사법제도만의 변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한국 시민 민중 자 의식의 변화를 동반하지 않고서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촛불을 들고 거리에서 함께 함성을 지를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국 사법제도에 내재해 있는 비민주적 요소, 중앙집권의 권력이 얼마나 사법권력을 쉬 예속시킬 수 있는 것인지 등을 12.3 내란을 통해 다수가 자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