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비정규직 판사는 수당제로 1년에 15일에서 30일(혹은 50일) 근무
영국은 시민 출신의 무급 치안판사가 행정과 사법 기능 공유
영국의 사법권은 입법부 관할,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행정부 관할
미국 헌법에도 3권분립이 없다
몽테스퀴에는 정부의 사법권력을 경계하여 시민 선출의 배심제 제안
사법 독립은 기관 독립이 아니라 대법원장으로부터의 인적 간섭 배제하는 것
「주권자 국민에 의한 사법개혁 연속세미나」 제4회 강좌(2026.1.19. 시민인권위원회 주최, 총 7회 줌 강좌 내용은 ‘daum’ 카페 참조, https://m.cafe.daum.net/k-humanrights/cOmj?boardType=)로 김명식 교수(조선대학교 법사회대학)가 <영국의 치안판사제도 개요>를 발표했다. 여기서 사법개혁을 추진 중에 있는 우리에게 특별히 귀감이 될 만한 것으로 우선 두 가지를 둘 수 있겠다. 첫째, 비정규직 판사제도, 둘째, 시민이 무보수로 봉사하는 치안판사제도이다.
위 첫째, 영국의 비정규직 판사는 ‘대리(deputy)’로 불린다. 대리고등법원판사(Deputy High Court Judges), 대리구역(지역)판사(Deputy District Judges), 치안판사법원 대리구역(지역)판사(Deputy District Judges(Magistrates' Courts), 기록판사(Recorders: 형사사건 담당)등이다. 대리구역(지역)판사와 치안판사법원 대리구역(지역)판사, 기록판사는 수당제이며, 매년 15일 이상 30일 혹은 50일까지 근무한다.
이들 비정규직 판사는 정규법관 인력을 보충하며, 사건 처리에 인력 부족의 공백을 보완한다. 한국같이 사건 수에 비례해서 턱없이 부족한 법관들이 1, 2심의 사실심을 졸속으로 처리하고, 3심급(대법원)은 심리불속행으로 재판받을 권리를 애초에 박탈하는 풍경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 유독 대법원 상고가 많다는 이유로 상고하는 이들을 나무라고, 애초에 상고를 원천차단하기 위해 상고심사제를 도입하자고 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부실한 1, 2심을 개선할 수 있는 판사 인력을 보충해야 하고, 정규직이 아니라면 비정규직 제도 신설이 시급하다.
위 둘째, 영국의 치안판사(judge of peace)는 법조 인사가 아니라 해당 지역의 일반 시민으로 임명되고, 경찰 혹은 각종 의원 출신은 치안판사가 되지 못한다. 이들은 대부분(소수 제외) 무급으로 봉사하고, 재판뿐 아니라 일정 범위의 행정사무를 겸한다. 치안판사는 행정과 사법의 권력이 분리되지 않은 영국의 제도를 상징하는 사례이다.
치안판사는 소규모 경미한 사건을 담당한다고 하는데, 이들이 전체 사건 수 80% 이상(2015~6년간 약 117만 건)을 처리하며, 치안판사법원은 전국 236개소(2017년 기준)이다.(참조: W. Geldart, 박홍규 옮김, 『영국법 원리』, 1995/ 옮긴 해 2020, xxv.)
1195년 「황실칙령(royal proclamation)」에서 기원한 치안판사직은 초기에 행정직이었으나, 점차 행정기능 축소되었다. 폭증하는 범죄에 대해 순회재판소(assizes)가 다 처리하지 못하게 되자 14세기부터 사법기능을 담당하게 되었다. 순회재판소가 여러 구역에 걸쳐 사법권 행사하는데 반 해, 치안판사는 해당 지역을 기준으로 임명되고, 그 지역의 관할권을 행사한다.
1554년에는 기소범죄에 대한 예비수사(preliminary investigation) 권한이 치안판사에게 부여되었다. 오늘날 체포영장(warrants of arrest)이나 소환장(summonses)을 발부할 권한과 같이 중요한 사법 행정기능을 보유하고 있다. 1997년 치안판사법, 2003년 법원법(Courts Act 2003) 등을 거치면서, 대법관에 의해 설치, 구성원이 임명되는 지역법원위원회(Local Courts Boards)가 해당 지역의 치안판사법원, 형사법원, 군(郡)법원의 운영 감독, 적절한 권고의 책무를 맡고 있다.
한편, 김명식 교수의 위 발표에서 언급되는바, 재고를 요하는 점이 두세 가지 있다. 첫째, 법치주의, 둘째, 사법권의 독립, 셋째, 한국 헌법과 법률에 언급되는 법관의 자격 범위에 관한 것이다. 이들 사항은 일본 사법제도 관련한 김 교수 발표에서 핵심은 아니고 변죽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발표 주제와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고, 또 일반적으로 그런가보다 여기며 태무심하게 지나치는 것으로서, 그 실체 여부에 대한 반성을 요하는 것이라 하겠다.
위 첫째, 법치주의 관련하여, 흔히 이것이 사법부와 관련된 된 것이라 여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런 것이 아니다. 법치주의 관련하여 살펴볼 것은, 법치의 주체가 누구인가, 또 법의 개념이 어떤 것인가 하는 점이다.
법치의 주체 관련하여, 그것은 무엇보다 입법부 국회가 중심이 된다. 국회가 입법하지 않으면, (성문)법 자체가 애초에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 예로, “영국이 법의 지배(rule of law) 원칙을 확립하고 법치국가를 실질적으로 구현”했다고 교과서에 서술되는 경우, 그 주체는 한국인이 보통 상상할 수 있는 사법부가 아니라 입법부 의회를 뜻한다. 영국의 법치는 왕의 자의적 통치에 반대한다는 개념으로서, 입법부의 입법이 왕의 명령을 상회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또 법을 집행하는 것도 법치주의에 입각해야 하는데, 그 주체는 행정부이다. 법을 어겼을 때의 규제나 처벌에 비로소 사법권력이 개입하게 되는데, 이것도 정부의 사법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위 영국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사법권력은 정부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시민 치안판사에 의해서도 행사되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 윤석열이 걸핏하면 ‘법치주의’를 떠들고 나왔는데, 그 행색이 마치 자신이 몸담고 있는 행정부가 법치 실현의 중심인 것 같은 인상을 준 적이 있었다. 그 법치는 대통령이나 행정부, 혹은 지금도 윤석열의 내란을 지지하는 듯한 짓거리를 구사하는 조희대 사법부의 전용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겠다. 법치는, 그들뿐 아니라, 국회와 시민이 온통 동참하고 서로 협조하여 이루어내야 하는 것이다.
다른 한편, 법치는, 그 핵심인 법의 개념 관련하여, 일정하게 고정된 개념이 아니라 그 외연이 다양하게 확대된다. 크게 성문법(제정법)과 불문법(영국의 경우 관습에 근거한 보통법[common law])으로 구분된다.
영국은 성문법이 아니라 불문법, 관습법, 보통법(common law, 혹은 공통법: 각 지역 관습법 가운데 공통된 요소를 모아 광범위하게 전국 단위로 적용하는 법)의 나라이다. 영국 법의 생명은 일관성이나 논리가 아니리 경험, 건전한 상식, 시대의 당위적 필요성, 지배적 도덕 및 정치이론, 공서양속(公序良俗: public policy)에 대한 의식적, 무의식적 직관, 판사가 동료들과 공유하는 편견 등이다.(Oliver Wendell Holmes, Jr. [2세], 박상수, 다니엘 김 옮김, 『보통법』, 한국문화사, 2019. 2-3쪽)
영미법계의 영국에도 제정법의 수가 적지 않으나, 법의 기본적 부분이 제정법이 아니라 판례법에 의해 규율된다. 영국은, 판례법이 우선으로 1차 법원(法源), 제정법이 2차 법원(法源)이 된다는 점에서 불문법의 나라로 분류되는 것이다.
보통법 및 판례법 주의(主義)에서는 보통법 및 판례법이 추상적 규정의 제정법보다 훨씬 상세하여, 법관의 자의적 해석 영역이 줄어든다. 제정법에서는 추상적 법규에서 해석을 연역해야 하나, 판례법주의에서는 세칙이 풍부하므로 법의 적용이 더 수월하다.
영국을 법의 지배(rule of law), 혹은 법치국가로 규정할 때, 그 법은 정부 혹은 사법부의 지배가 아니라, 국황의 자의적 통치 위에 입법의 의회가 존재한다는 것, 또 전문 법조인의 법 해석이 아니라 판례와 시민의 상식에 의거한 법의 실천과 해석에 의거한다는 뜻이다. 영국 치안판사 등 시민법관은 판례법주의의 상식에 의거하여 재판하고, 또 미국 배심재판은 때때로 법을 무시하고 초법률적으로 재판하는 경향이 있다고도 한다. 영국과 미국의 법치의 중심에는, ‘(성문)법’이 아니라, 그 법을 해석하고 실천하는 인적 요소로서의 ‘시민’이 있다.
나아가, 영국에는 지방자치와 함께 자치단체법원, 즉 공동체법원(Communal Court)이 있다. 이것은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인민집회 겸 재판집회이다. 이것은 기초자치단체격에 해당하는 'hundred(백인촌)' 등이 상위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고유의 자치를 누리고 있었던 사실을 증명한다.(참조: W. Geldart, 박홍규 옮김, 『영국법 원리』, 1995/ 옮긴 해 2020, 31-32쪽.) 지역자치단체의 공동체법원은, 상식에 따르며, 고유의 관습법이 행사되는 공간으로서, 제정법은 물론 보통법(영미법)도 다소간 미치지 않는 독립된 공간이다.
이 자치단체법원은, 법치가 아닌 인치 즉 관습 및 사람의 상식에 따른다는 점에서, 인민재판소의 성격을 띠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중세 당시의 영주나 국왕이 개입하는 재판소와도 성격을 달리한다. 후자는 상식이 아니라, 신판(神判), 결투, 지지자의 수 등에 따라 승소 여부가 결정되었는데, 이것은 현실적으로 세력이 강한 쪽이 승자 됨을 뜻하는 것이다. 봉건적 무정부 상태에서 분쟁을 해결하는 합리적 방법은 논리가 아니라 힘이었고, 힘에 따른 승패의 결정은 현실적으로 더 심한 분쟁의 소지를 줄이는 이점이 있었다.
위 둘째 ‘사법권의 독립’ 관련하여,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 이론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로부터 행정, 입법, 사법의 3권분립이 비롯된 것으로 회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테스퀴에는 정부기관으로서의 사법권력을 말하지 않았고, 사법권 독립(judicial independence)의 원칙을 어디서도 천명된 적이 없다.
몽테스키외의 권력분립론에 따르면, 국가에는 세 가지 권력이 있다. 제1권력은 입법권, 제2권력은 만민법을 집행하는 권력, 제3권력은 시민법을 집행하는 권력이다. 입법권은 법률을 제정하고 개정하는 권력, 만민법의 집행권은 전쟁과 강화, 대사 파견, 치안 유지와 침략 대비를 하는 권력, 시민법의 집행권은 범죄를 처벌하고 개인의 쟁송을 재판하는 권력이다.
강승식(「권력분립 해석론에 관한 연구 – 미국에서의 논의를 중심으로」, 저스티스, 통권 113호, 2009, 9.)은 이종상(「헌법상 권력 구조론」, 경남대학교출판부, 1997, 158면)의 견해를 인용하여, 사람들이 제2권력을 행정권, 제3권력을 재판권으로 부른다고 한다. 이영우(「권력분립에 관한 연구」, 토지공법연구, 85, 2019, 376~377.)는 제2의 권력에 대해, 이것이 록크의 동맹권같이 보이나 그렇지 않고 재판권을 제외한 집행권으로 오늘날의 행정권을 말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몽테스퀴에의 제2, 제3의 권력을 각기 행정권, 사법권으로 쉬 규정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다. 그 근거는 두 가지이다. 첫째, 몽테스퀴에의 3권이 로크가 제시한 3권과 닮았다는 것인데, 로크의 3권에는 사법권이 없다. 둘째, 몽테스퀴의 정부의 사법권력을 경계하여, 오히려 시민이 선출하는 배심재판관에 의해 행사되도록 했다는 점이다.
위 첫째 관련하여, 17세기 말(1690년) 로크(John Locke)는『시민정부이론』에서 국왕과 의회를 구분하고, 또 국가권력을 입법권, 집행권, 동맹권의 3권으로 구분했다. 그는 사법권의 독립을 말하지 않았다.(강경근, 「국가권력의 형성 – 학설과 판례 2」, 고시연구, 1992.3, 166.) 입법권은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에 속하고, 집행권은 법률을 집행하는 것, 동맹권은 외교, 국방 등 국제관계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다.
로크에 의하면, 집행권과 동맹권의 두 권력은 공적 강제력이기 때문에 결합되어야 한다. 반면, 입법권은 집행권과 분리되어야 한다. 두 권력을 동시에 장악하게 되면, 스스로 만든 법률에 대해 복종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문광삼, 「권력분립원리로서의 대통령제와 대통령의 지위」, 고시계, 2001.9, 35.) 그의 권력 분립론의 핵심은 입법권과 행정권의 분할이었다. 이때 입법권은 국가권력이 공동체와 그 구성원의 보전을 위해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지를 법으로 정하는 권한, 행정권은 법의 집행을 감독하는 권력으로서 법을 위반한 자를 처벌하는 권한으로 정의했다.(강승식, 「권력 분립 해석론에 관한 연구 – 미국에서의 논의를 중심으로」, 저스티스, 통권 113호, 2009, 8~9.)
위에서 이영우는 몽테스퀴에의 제2의 권력에 대해, 이것이 록크의 동맹권같이 보이나 그렇지 않고 재판권을 제외한 집행권이라 보았다. 그러나 몽테스퀴에의 제2 권력인 만민법의 집행권은 전쟁과 강화, 대사 파견, 치안 유지와 침략 대비를 하는 권력으로서, 로크의 동맹권과 같은 맥락의 내용을 담고 있다. 만민법이라는 용어 자체가 국제관계를 뜻하는 것이다.
몽테스퀴에의 제2권력을 국가 내부의 행정권으로 해석한 이들은, 제3권력인 시민법의 집행권을 사법권으로 이해했다. 범죄를 처벌하고 개인의 쟁송을 재판하는 권력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크의 경우, 행정권은 법의 집행을 감독하는 권력으로서, 법을 위반한 자를 처벌하는 권한으로 정의했다. 로크의 행정권은 몽테스퀴에의 제3권력인 시민권법의 집행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로크와 몽테스퀴에는 다 같이 행정권을 법에 입각하여 국내에서 행사하는 권력으로 보았고, 그 주요 임무는 치안을 유지하고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었다.
몽테스퀴에의 제2권력인 시민법을 집행하는 권력은 국내의 행정에 수반되는 치안 유지 및 분쟁의 해결을 뜻하는 것일 뿐, 행정과 분리된 사법권력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법을 집행하는 행정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법 기능은 분리하기 쉽지 않고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다. 지금도 프랑스는 사법 기능의 법원이 행정부에 소속되어 있고, 검찰은 법원 관할 하에 있으므로, 같이 행정부 소속이다.
위 둘째, 몽테스퀴에는 입법, 행정, 사법의 세 가지 권력 중에서 사법권력은 일면 무효하며, 결국 두 가지 권력만 남는다고 한다. 다른 한편, 그는, 재판권력은 상설 원로원이나 특별 기관에 맡겨져서는 안 되며, "일반 국민 중에서 선출된 사람들에게" 맡겨져야 한다고 보았다. 즉, 흔히 배심원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에게 맡겨져야 한다는 것이다.(Charles de Montesquieu, L’esprit de Lois, Paul Janet ed. with introduction, Paris: Librairie Ch. Delagrave, 1892. [The Project Gutenberg eBook of Esprit des lois, gutenberg.org/cache/epub/27573/pg27573.txt]) 그는 “인간에게는 매우 무섭게 느껴지는 사법권이 특정 계층이나 직업에 귀속되지 않게 되면 정부 권력으로 군림하지 않게 되고. 우리는 항상 눈앞에 판사들을 두고 판사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제도를 두려워하게 된다”고 한 것도 그 같은 맥락에 있다.
몽테스퀴에는 영국의 정치체제를 이상적인 것이라 여겼던 것으로 전한다.(강승식, 「권력 분립 해석론에 관한 연구 – 미국에서의 논의를 중심으로」, 저스티스, 통권 113호, 2009, 9.) 프랑스 부르봉 왕조의 압제를 직접 경험한 그가 권력 통제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는 것이다. 그가 영국에서 주목한 것은 입법, 행정, 사법권이 실제로 분할되고 있다는 점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영국의 사법권은 정부 권력의 전유물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당시 영국의 배심재판과 시민 치안판사제도는 정부 권력의 일환이 아니었고, 그래서 일면 ‘무효’한 것이 되고, 결국 몽테스퀴에에게는, 위에서 소개한바, 입법과 행정의 두 가지 권력만 남게 되는 것이다. 몽테스퀴에의 3권분립에는 정부 군력 구조로서의 독립된 사법권력이 존재하지 않고, 그 사법권은 시민이 선출한 이들, 혹은 배심원에게 맡겨져야 하는 것이었다. 몽테스퀴에는 사법권력의 분리 독립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정부의 사법권력 전횡에 대한 시민의 통제력 강화를 피력했다.
빡떼(Pierre Pactet)에 따르면, 영국같이, 양대 정당제 하에서의 의원내각제는 내각 안에 모든 권력을 집중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권력분립론이 적용되지 않는다. 2005년 영국 헌법개혁법(Constitutional Reform Act 2005)에서 사법적 독립(judicial independence)이 언급된다. 이것은 정부 기관 간의 분립과 독립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판결에 임하는 재판관이 상급 관료(Lord Chancellor: 대법원장인 동시에 상원의장) 등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한다는 뜻이 된다. 이것을 작금의 한국 경우에 빗대면, 사법부가 다른 정부 기관들로부터 독립하여 간섭받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판사들이 대법원장 조희대로부터 독립해서 판결을 내린다는 뜻이다.
위 셋째, ‘판사’의 개념 관련하여 김명식 교수는, 우리 헌법(제103조 제3항)과 법원조직법 제4편(법관의 종류를 대법원장, 대법관, 판사로만 규정)에서 법관자격법정주의를 규정한 것으로 보았다. 이에 ‘판사’라는 지위의 법관이 제1심과 제2심의 재판은 물론, 간이재판까지도 모두 담당함으로써, 부작용을 발생시키는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김 교수의 의견과 달리, 헌법과 법률에 언급된 ‘판사’의 개념 안에는 시민법관이 포함될 수 있다. 헌법 어디에도 사법시험 합격해야 판검사가 될 수 있다는 자격은 적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직업 판검사가 사법고시 합격자로 임관되는 것은, 필자가 견문한바, 대통령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헌법 및 법률 수정 없이, 대통령 시행령 개정으로, 시민법관제도는 시행 가능한 것이라 하겠다.
이상 논의 관련하여, 영미법계에서 시민이 차지하는 사법 및 정치의 역할에서 우리 한국이 참고로 할 수 있는 점을 두세 가지 첨언한다. 첫째, 한국에서 관료인 직업법관을 견제, 보완하기 위해 사법에서 시민의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점이다. 영국의 시민 치안판사 제도, 미국의 시민 배심재판관 제도가 있을 뿐만 아니라, 미국은 증거법(discovery)에 의해 원고와 피고가 직접 증거를 확인하고 발견할 수 있다. 한국같이 재판관이 증거에 대한 해석, 채택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배심재판관은 분쟁 쌍방이 제출한 증거에 기반하여 하루(혹은 이틀)의 집중심리로 판결을 도출한다. 사법 절차에서 시민의 개입이 활성화된 미국에서는 정부 권력구조에서의 사법권 독립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색하다. 미국 헌법에도 3권분립이란 표현은 쓰이지 않는다.
영미법계뿐 아니라 대륙법계로 분류되는 일본의 경우에도 법관 아닌 시민의 역할은 크다. 일본이 조정제도의 천국으로 알려진 것이 그러한데, 이것은 많은 경우, 소송 진입 전 분쟁 쌍방이 조정을 거치는 것이다. 조정과정은 사적으로 이루어지며, 조정과정에서 서로의 증거와 주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같은 일본의 조정제도는 경미한 것까지 모조리 법원으로 들고가서, 법원의 업무 폭증과 판사의 부실 판결을 야기하는 한국과는 괴리가 있다.
둘째, 법치 혹은 통치 권력보다 사람의 자유가 우선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영미법계의 미국 헌법 개정조항에서 시민의 무기소지(제2차 헌법개정: 자유로운 주[州]의 안보를 위한 것)와 대배심(제5차 헌법개정: 기소여부 결정)과 배심재판(제6차 헌법개정)의 권리를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난다. 전자는 시민이 자유를 훼손받는다고 생각할 때 언제나 저항할 수 있음을 뜻하고, 후자의 시민 배심재판은 법치의 개념을 초월하여 시민(인민)의 상식이 준거가 된다는 사실을 뜻한다. 정부 권력에 대한 자유 시민의 저항은 협소한 법치의 개념에 종속되지 않는다.
셋째, 몽테스키외는 국가 최고기관 상호 간의 수평적 권력분립뿐만 아니라 그 하부조직, 즉 오늘날에 있어서 지방자치단체와 국가기관 사이의 수직적 권력분립이 필요함을 적시했다. 수직적 권력분립은, 공기관의 지역 이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행정, 입법 등 정부 권력 자체의 구조적 분산을 뜻한다. 한국에서 회자하는바, 지역살리기가 공기관 지역 이전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고 보는 단세포적 사고와는 차원이 같지 않다.
또 현 정부에서 40조의 돈을 풀어 지역 단체장을 광역으로 통합한다고 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5극3특 광역경제개발단위, 각종 중앙권력과 재정의 이전, 정부 재정의 20조 혹은 40조 투입 등, 그 무엇이거나 지역 단체장의 통합을 전제로 해서 비로소 실현 가능한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이다. 풀리는 돈이 많아지고 더 큰 권력이 지역으로 이전될수록, 지역자치단체 주민들이 그 용도와 시행과정에 대해 두 눈을 크게 뜨고 감시를 철저하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경제단위의 광역화는 지역 단체의 통합이 아니라, 지역자치권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상호 연대와 협력을 통해서 추진되어야 한다.
단체장의 통합은 지역을 중앙의 일방적, 관료적, 획일적 지배에 적합한 ‘순둥이’로 만드는 첩경이다. 주민의 뜻을 일단 접어두고, 단체장, 국회의원을 동원하여 국회 입법을 통해 전격적으로 지역 단체장 광역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 그 증거이다. 말만 자치단체이지, 실제로 자치가 아니기 때문에 이 같은 상의하달 형식의 통합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같은 상의하달 구조에서 명색이 ‘자치’한다고 하는 주민이 겉도는 것같이, 40조 원 재정도 주민이 개입하고 감독할 수 없는 형식으로 운용될 것이 명약관화하다는 점이다. 주민의 자치와 감시가 전제되지 않은 재정의 투입은 박정희식 개발경제에서처럼, 그 경제적 상승효과(시너지)에서의 불평등 배분을 초래하게 될 전망이다. 중앙권력이나, 중간권력이나, 국민, 시민, 주민의 감시가 없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꼴이 난다.
사법권력뿐 아니라 행정권력도 마찬가지이다. 영국 치안판사의 역할에서 보듯이, 양자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고, 딱 부러지게 분리될 성질의 것도 아니다. 같은 권력 구조에서 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