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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자영의 금요칼럼]국회무용론(143) 압도적 승리, 지방선거 실패 운운하는 황명선(민주당 최고위원)은 비민주적 일당 독재 체제 지향

최자영 | 입력 : 2026/06/19 [19:51]

민주적 선거는 근소한 차이의 승리를 최적의 상태로 간주
중도(中道)는 승리한 정당이 베푸는 관리 차원의 선처가 아니라
근소한 차이의 정당 간 권력균형에서 오는 부득이한 결과
입법부 여당 대표가 행정부 대표(대통령)에게 90도 절하고
대통령이 의전정치 하는 것으로 해석하는 나라 대한민국

황명선(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해 김민석(당시 최고위원)이 총리가 되면서 빈자리를 메꾸며 최고위원이 되었다. 그가 8월 전당대회 당 대표 후보로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그 이유로서, 그는 이번 지방선거(지선)에서 민주당이 성공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었다. 내란청산과 민생회복, 이재명 정부 성공의 발판이라는 목표도 이루지 못했다고 보았다. 또 이런 결과가 우리(민주당)의 방심과 나태가 부른 참담한 결과라고 하고, 이에 대해 깊이 성찰한다고도 했다. 그래서 황명선 자신부터 그 책임을 통감하고 전당대회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참조: https://www.youtube.com/shorts/1mzuwyxp83g)

길지도 않은 황명선의 발언이 노정하는 모순과 독선은 주로 이분법에 입각한 것이다. 한편에 방심과 나태로 실패한 민주당, 다른 편에 성공한 대통령 이재명을 대조적으로 설정한 것이 그러하다.

이런 이분법에 내포된 독선은, 첫째, 이재명이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그의 평가에 보인다. 이러한 평가는 시기상조한 것이다. 아직은 누구도 이재명이 ‘가장 성공한 대통령’이 될 것인지 여부를 평가할 수 없다. 앞으로 두고 봐야 할 것이다. 황명선은 자신의 희망,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성을 기정사실로 바꿔치기했다.

문제는 그 같은 황명선의 예단이 대통령의 ‘성공’뿐 아니라 민주당 ‘실패’ 담론에도 적용된다는 점이다. 압도적 승리를 거두지 못하면, 무조건 실패한 것으로 보는 것이 그러하다. 그 실패는 자신을 포함한 지도부 및 당 대표의 책임인 것으로 수렴하고 있다. 황명선이 도출하는 이 같은 등식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일정한 개인적 목적에 집착한 것이란 점에서 자의적이다.

황명선의 두 번째 독선은 민주당의 실패에 이재명의 책임이 전혀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황명선은 “대통령께서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하신 말씀처럼, 우리는 이겨야 할 곳에서 졌고, 과연 죽을 힘을 다 했는지, 이 결과를 국민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황명선의 눈높이에서 보면, 대통령의 이 말이 ‘실패한 민주당’을 겨냥한 것임이 틀림없게 된다.

이로써 황명선은 ‘가장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대통령을 몰염치한 인간으로 내몰았다. 지선의 ‘실패’를 두고, 자기는 면피하고, 남탓만 하는 인간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황명선의 해석대로라면, 사사건건 대통령 및 행정부(총리, 장관 등)가 국회의 일에 개입하는 한국의 정치 풍토에서, 대통령은 참으로 몰염치라고 뻔뻔한 인간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셋째, 황명선은 민주당의 ‘실패’가 “우리(민주당)의 방심과 나태”에 기인한 것으로 규정했다. 그 뜻은 ‘정책’에서의 실패가 아니라는 뜻이다. ‘방심과 나태’는 주의(注意) 여부를 말하는 것이지만, 정책은 방심, 나태 등 주의 여부가 아닌 방향성의 문제이다. 그는 정책 방향의 문제를 ‘방심과 나태’ 차원으로 변질시켰다. 이 같은 변질은, 이른바 ‘성공한 대통령’은 열심히 하는데 반해, 민주당은 ‘방심, 나태’했다는 이분법으로 이어진다.

정책의 문제로 들어가면, 그 같은 이분법은 더욱 적용하기가 어렵다. 민주당이, 입법과 행정의 제도적 구분조차 무시한 채, 대통령을 포함한 ‘당·정·청(민주당, 정부, 청와대)’ 일색을 기치로 하는 마당에, 대통령 빼고 민주당만 떼서 책임을 묻기가 곤란하다. 황명선은 ‘정책’의 담론을 지워버림으로써 앞으로도 정책에 대한 담론이 사라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그의 관점대로라면 앞으로도 “생살을 도려내는 혁신”에서 정책에 대한 논의가 제외, 보류된다.

넷째, 황명선의 이 같은 입장은 이재명(정부)의 정책을 무오류,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결과도 낳았다. “국민은 이재명 정부를 전폭 지지하며 삶의 힘이 되는 비전을 듣고 싶어 했지만, 우리는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공천 갈등과 선거 과정의 삐걱거림은 중도층, 청년, 영남 민심에 거부감을 안겼다” 등 발언이 그러하다.

황명선의 이분법은 여기에도 적용된다. 국민은 “이재명 정부를 전폭 지지하며, 삶의 힘이 되는 비전을 듣고 싶어”한 반면,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고”, “공천 갈등과 선거 과정의 삐걱거림은 중도층, 청년, 영남 민심에 거부감을 안긴” 것이니, 이는 ‘우리’ 때문이다. 문맥으로 보아, 그 ‘우리’는, ‘이재명(정부)’은 포함하지 않는바, 오롯이 ‘민주당’인 것으로 풀이된다.

황명선의 이 말을 뒤집으면 그 뜻은, 첫째, 삶의 힘이 되는 비전을 듣고 싶어하는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이재명 정부를 전폭 지지하는 것이라는 것, 둘째, “공천 갈등과 선거 과정의 삐걱거림으로 중도층, 청년, 영남 민심의 거부감을 안긴” 주체는 ‘우리’일 뿐, 이재명(정부)이 아니라는 것으로 복기될 수 있다.

황명선은, 이재명(정부)을 따르는 것이 국민의 뜻을 헤아리는 것이고, 또 “공천 갈등과 선거 과정의 삐걱거림”도 없애는 것이고, 중도층, 청년, 영남 민심의 거부감도 발생시키지 않는 것이라 보는 것 같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황명선의 절대적 기대는 종교적 신념에 버금간다. 이런 구도에서는, 국회는 존재 의미 자체를 상실한다. ‘이재명 정부에 대한 전폭 지지’는 민주당의 ‘방심과 나태’ 혹은 ‘죽을 힘을 다 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국회의 토론과 입법 기능 자체를 무력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황명선은 “생살을 도려내는 혁신으로 유능한 집권 여당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하면, 우리는 가장 성공한 대통령을 배출하고도 정권 창출에 실패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도 이분법이 적용된다. 한편에 ‘성공한 대통령’이 있고, 다른 편에, ‘유능한 집권 여당으로 다시 태어나지 못하는’ 민주당의 존재가 있음이 그러하다.

황명선은 “기득권에 안주하는 낡은 여당에 머물지 말라는 국민의 경고, 특히 2030 세대의 선택에 담긴 뜻을 무겁게 새기고 근본부터 바꿔야 한다”, “국힘당을 택한 국민의 마음까지 헤아리지 못한다면, 2028년 총선과 2030 대선에서 더 큰 실패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국민의 경고”는 ‘이재명 정부’가 아니라, ‘민주당’을 향한 경고가 되고, “근본부터 바꿔야” 하는 주체도 ‘이재명 정부’와 무관하다. 황명선은 “국민이 이재명 정부를 전폭 지지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국민은 무조건 옳다”고 했다. 국민은 동일체로 간주되고, 그 동일체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기원하고,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여기서는, 국민 간의 상호 갈등은 생략되고, 이재명 정부와 민주당 간의 간격만 존재한다.

다섯째, 이번 지선에서 민주당이 성공하지 못했다거나 참담한 결과를 빚었다는 평가에서, 황명선은 물론 이재명 등은 다소간 민주당 일당 독재를 지향하고 있다. 그 민주당 위에는, 황명선이 국민의 전폭적 지지를 받는 것으로 설정한, ‘성공한 대통령’ 이재명이 군림하게 된다.

민주당의 압승과 재집권에 대한 황명선의 독선적 입장은 야당에 대한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우호적인 야당과의 관계, 관리에도 실패했다”고 민주당을 탓한 것이 그러하다. 그는 야당을 ‘협조’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은 민주당의 압도적 승리를 노리는 탐욕과 긴밀하게 연관된다.

이재명이 한편으로 야당과의 통합과 포용을 말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이번 지선을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규정한 것은 황명선이 말하는 ‘압도적 승리’와 취지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재명이 말하는 통합과 포용도 압도적 승리를 거둔 여당이 야당을 ‘관리’ 대상쯤으로 대하려 하는 점에서 황명선의 발언과 상통하기 때문이다.

황명선의 독선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민주당에 돌아가는 책임을 자신과 당 대표를 포함한 당의 지도부가 져야 하며, 그래서 이들은 차기 당 대표에 출마하면 안 된다고 한다. 압도적으로 이겨야 할 이번 지방선거에서 승리로 이끌지 못하고 실패했으므로, 당의 지도부는 차기 당 대표에 출마하지 않는 것이 도리라고 하는 것이 그러하다.

여기서 황명선의 독선이 초래하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겠다. 첫째, 자기 생각이 그러해서 자신이 출마하지 않는 것은 자유의 영역이겠으나, 그 같은 자기 생각을 타인에게까지 전가 강요하는 것은 월권이다. 둘째, 민주당의 지선 ‘실패’라는 전제가 성립하지 않으면, 황명선의 모든 서사(敍事)가 헛소리가 된다는 점이다.

황명선은 물론 이재명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은, 민주정치는 한 정당의 압도적 승리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쟁 상대들이 서로 가장 근소한 차이로 승패를 가리는 상태를 최선으로 삼는다. 그래야 이긴 쪽이 진 쪽을 대놓고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여차하면 추가 다른 곳으로 기울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득이 독선 아닌 중도를 지향하게 된다. 그 중도는 압도적 승리를 거둔 여당이 야당에 대해 관리 차원에서 베푸는 선처가 아니라, 권력의 균형에 의해 부득이하게 초래된다.

황명선이 말하는 압도적 승리는 일당 독재 하겠다는 뜻이다. 야당과 국민에 대해서 죄다 그러하다. 그에게서는, 압도적으로 승리한 여당이 야당을 협조 아닌 관리의 대상으로 격하시키게 되고, ‘언제나 옳기만 한 국민’은 획일화되어 이재명 정부를 전폭 지지하는 것으로 왜곡되고 있다. ‘언제나 옳은 국민’은 급기야 압도적 승리를 거둔 권위적 독재 정권 재창출의 수단으로서의 수사(修辭: 헛소리)가 된다.

염려스럽게도 현재 한국에서 행정부 독주의 징후는 정작 여러 곳에서 드러난다. 한 예로, 대통령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등, 8박10일 동안의 첫 유럽 순방을 마친 뒤 도착하는 장면 또한 그러하다. 출국 당시에는 이례적으로 당 대표는 부르지 않고, 총리(김민석)만 불렀고, 귀국길에는 둘 다 불렀다고 한다. 여당 대표가 대통령에게 90도로 깍듯이 인사했다.

한겨레에 따르면, 지난 9일 이 대통령의 유럽 순방 출국 환송 행사에 정 대표는 불참하고 김 총리는 참석하면서, 청와대가 정 대표에게 ‘비토(거부)’ 신호를 보낸 것 아니냐는 말이 나왔다고 한다. 또 대통령의 귀국길에는 청와대가 정 대표를 초청할지 일주일 가까이 고민했다고 하고, 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동반 하락하는 상황에서 당·청 관계가 흔들리고 내전을 방불케 하는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도움되지 않는다는 판단을 청와대가 한 것으로 보인다고 토를 달았다.(한겨레, 2026.6.18.)

입법부와 행정부는 서로 독립된 기관이다. 더구나, 입법부는 모든 법의 제정권을 가지고, 행정부는 그 법 집행하는 곳이다. 몽테스퀴에는 2권 중 입법권이 행정권 위에 있는 것이라 정의했다. 한겨레가 전하는 정보와 주석이 사실이라면, 당 대표와 대통령 간 관계에서 입법부가 행정부에 종속된 듯한 징후가 엿보인다. 세상에 어떤 나라에서 행정부 수장이 입법부의 당 대표에게 의전을 통해 압력을 행사하나? ‘당·정·청’ 협력이라는 미명으로 행정부가 입법부를 종속적 지위에 두거나 행정부 수장(대통령)이 입법부 당 대표를 ‘비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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